촬영장 한쪽, 분장실 안이 어수선하다.
테이블 위엔 핏빛 액체가 담긴 통, 실리콘 재질의 살점,
붉고 검고 푸른색 염료가 뒤섞인 팔레트가 널려 있다.
그 사이에서 마스크를 쓴 분장사가
배우의 얼굴에 무언가를 덧바른다.
순식간에 살갗이 일그러지고,
눈 밑은 검게 꺼지고, 입술은 피범벅이 된다.
그저 사람 얼굴이던 것이
몇 분 만에 영화 속 좀비로 바뀌는 순간.
이 장면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특수분장사‘다.

이 사람들은 뷰티 메이크업과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분장사’라고 하면
드라마 속 배우들의 피부 톤을 맞춰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떠올리지만,
특수분장사는 ‘상처’, ‘괴물’, ‘죽음’, ‘비현실적인 존재’를 만드는 직업이다.
- 총상, 칼에 찔린 상처, 화상 자국
- 시체처럼 변색된 피부톤, 부패한 근육 묘사
- 귀신, 괴물, 좀비, 외계인 등 인간 아닌 존재 표현
- 절단된 팔다리나 튀어나온 장기 같은 실리콘 소품 제작
- 가짜 피, 화상 껍질, 핏줄, 멍자국 등 극사실 표현
이런 디테일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일이 특수분장사의 일이다.
뷰티 아티스트가 사람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면,
특수분장사는 더 끔찍하게, 더 충격적으로 만든다.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디테일이 생명이다
좋은 특수분장이란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리얼한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피부의 재질, 근육 방향, 실제 부상 패턴까지 연구해야 한다.
가령, 총상을 표현할 땐
탄환의 진입 방향, 출혈 범위, 열에 의한 타박상을 고려해서
앞면보다 뒷면 상처를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좀비를 만들 때는
피부색 하나에도 세 가지 이상 색을 섞어 칠하고,
썩어가는 듯한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라텍스, 젤라틴, 실리콘 등을 층층이 붙인다.
그리고 마지막엔 피처럼 보이는 액체(스테이지 블러드)를
붓거나, 뿌리거나, 입 주변에 일부러 흘려서 얼룩지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수분장은 하나의 수작업 조형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다.

한눈에 보는 특수분장사의 현실
특수분장사는 영화, 드라마, 연극, 광고, 테마파크, 게임 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부분 프리랜서나 팀 소속으로 일한다.
항목 | 내용 |
---|---|
주요 업무 | 좀비, 시체, 괴물, 상처 등 특수효과 분장 작업 |
활동 분야 | 영화, 드라마, OTT, 공포 체험관, 병원 시뮬레이션 등 |
수익 구조 | 건당 30만 원~300만 원 / 월수입은 현장 투입량에 따라 다름 |
자격 요건 | 관련 전공·특수분장 교육 이수, 실무 경험 중요 |
장비 | 스펀지, 라텍스, 스테이지 블러드, 실리콘, 특수붓, 에어브러시 등 |
작업 시간 | 메이크업 1건당 최소 1시간~5시간 이상 소요 |
특수분장사는 외주 단가가 높을 수 있지만
현장 대기 시간과 피팅 조정, 수정 보완 등으로 노동 강도도 꽤 높은 편이다.
특히 여름철엔 라텍스와 실리콘이 잘 녹기 때문에
기온·습도에 따라 작업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 일은 예술, 과학, 감각이 섞여 있어야 가능하다
좋은 특수분장사는 해부학 지식, 광원에 따른 색감 감각,
그리고 무대·카메라 특성을 고려한 설계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같은 상처라도
무대 조명 아래에서는 강하게 보여야 하고,
영화 카메라에선 더욱 리얼하지만 과하지 않게 보여야 한다.
그래서 색조를 실제보다 조금 더 진하게 쓰기도 하고,
조명의 각도에 따라 음영을 다르게 칠하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 배우의 움직임을 고려해 ‘떨어지지 않게’ 붙여야 하고
- 씬이 끝나면 빠르게 제거 가능한 분장으로 바꿔야 하기도 한다
예술적 감각 + 기술 + 촬영현장 이해력이 동시에 필요한 직업인 셈이다.

누구나 무서워하지만, 누군가는 이걸 ‘꿈의 직업’이라 말한다
특수분장사는 혼자서 좀비를 만들고,
사람을 시체로 만들고,
영화 속 괴물을 실제로 눈앞에 등장시키는 일을 한다.
어릴 때 괴수영화를 좋아했던 사람,
피가 튀는 장면에 흥미를 느꼈던 사람,
혹은 세상에 없는 생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직업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상상력을 실현하는 무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분장실 안에선
누군가가 가짜 피를 뿌리고
썩은 살점을 손으로 만들어 붙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