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뒤편, 말없이 땅을 파는 사람들
AI(조류인플루엔자), ASF(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언론에서는 전염병 확산 속도와 피해 규모만 보도되지만,
그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수천 마리의 동물을 직접 살처분하고 매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방역 살처분·매몰 작업자다.
이들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들을 죽이고, 땅속에 매몰하는
정신적·신체적으로 모두 극한에 놓인 직업이다.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전염병 의심이 확인되면, 해당 농장은 전면 출입통제되고
지자체 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명령으로
살처분 작업이 시작된다.
작업자는 먼저 축사 주변을 방역 소독한 뒤
- 살처분 대상 동물을 포획하고
- 이산화탄소 또는 질식 방식으로 집단 폐사시키며
- 사체를 위생복을 입고 직접 포대에 담아 매몰지로 이송한다.
이후에는 석회 분사, 비닐 밀봉, 비산 방지 조치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작업자는 매몰까지 평균 8~10시간 이상 방호복을 입은 상태로 작업하며,
때로는 수천 마리 단위로 며칠씩 이어지는 작업을 감내해야 한다.

정신적 충격은 실체적이다
살처분 작업의 가장 큰 고통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작업자들은 살아 있는 동물의 울음과 움직임을 마주한 채,
죽음을 직접 유도해야 하는 감정적 부담을 겪는다.
작업 도중 닭이 날개를 퍼덕이거나 돼지가 울부짖는 소리는
작업 이후에도 귀에 맴돌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장시간 방호복을 입고 폐사된 동물의 사체를 접하면서
악취, 분뇨, 핏물 등에 노출되며 감염에 대한 불안감까지 함께 따라온다.
일부 작업자는 몇 년이 지나도
고기를 먹지 못하거나, 관련 장면만 봐도 불안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감염 위험과 방역 고위험군
이 작업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다.
전염병 현장 자체가 고위험 지역이기 때문에
작업자는 2중 방호복, 고글, N95 마스크, 장갑 3겹을 착용하고
작업 전후 전신 소독, 장비 멸균, 폐기물 분리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작업하면 방호복 내 온도가 40도 이상 올라가고,
호흡 곤란, 탈진, 어지럼증, 저혈당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한 날카로운 뼈 조각, 날 뛰는 동물에 의한 상처,
작업 중 미끄러짐 등 2차 사고 위험도 상존한다.

어떤 사람들이 이 일을 할까?
이 작업은 주로 지자체 방역 인력, 축산 관련 공공기관, 민간 위탁 업체의 인력들이 맡는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투입된다.
- 살처분 교육 이수자
- 방역 안전 및 감염병 예방 교육 이수자
- 심리 상담 및 응급 대응 교육 수료자
- 체력 조건 충족, 고열작업 가능자
- 작업 후 일정 기간 감염 모니터링 동의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일반인 대상의 단기 채용을 통해
전염병 발생 시 긴급투입 인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 작업의 과정과 보상은 어떻게 되나?
살처분 작업은 시간당 1~2만 원 수준에서 시작되며,
고위험 작업인 만큼 위험수당, 방역수당, 식사비, 장비비, 격리수당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업무의 특수성에 비해 보상은 결코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 작업자 상당수가 단기 계약직 또는 일용직이며
- 작업 종료 후 심리치료, 건강검진 등 후속 관리가 미흡한 경우도 많다
- 1~2회만 경험하고 재투입을 거부하는 사람도 절반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정신적 부담이 크고, 고립감과 죄책감이 오래 남는 일이다.
한눈에 보는 살처분·매몰 방역 작업자의 정보
항목 | 내용 |
---|---|
직업명 | 살처분 방역 요원, 매몰지 작업자, 동물 방역 긴급투입 인력 |
주요 업무 | 전염병 확산 농장의 동물 살처분, 매몰, 방역 소독 및 후처리 |
근무 환경 | 밀폐 축사, 야외 매몰지 / 고온, 악취, 소음, 감염 위험 상존 |
수입 수준 | 일당 10만~20만 원 / 위험수당·식비·장비비 포함 / 근무일수 제한 있음 |
필요 자격 | 방역·살처분 교육 이수자 / 감염병 예방 훈련 수료자 / 심리 상담 가능자 우대 |
활동 기관 | 지자체 방역팀, 농림축산식품부, 민간 방역 용역업체 등 |

우리 곁에 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직업
전염병 뉴스가 지나가고, 언론에선 백신 개발이나 정책 변화가 이야기되지만
그 중심에서 말없이, 묵묵히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감내했던 이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이 없었다면 전염병은 더 확산됐을 것이고,
더 많은 동물과 사람, 그리고 농촌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 직업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 무겁고 고독한 현실 속에서,
방호복 뒤에 숨은 얼굴들이 매일같이
우리 사회를 조용히 지켜내고 있다.
그 직업은,
살처분·매몰 방역 작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