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깊은 산속 광산 입구.
노란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긴 케이블과 계산 장비를 들고 바삐 움직인다.
이들은 곧 지하 수십 미터 아래의 암석을 터뜨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 폭파는 단순히 ‘쾅’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폭파의 각도, 방향, 폭약의 양,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파가 일어나는 시간차까지
모두 사람이 계산하고 설계한 결과다.
그 중심에는 발파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있다.
이들은 땅속 구조를 분석하고,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넣는 폭약의 위치와 순서를 ‘시간 단위’로 조정하는 전문가다.
이 직업이 없다면 광산은 무너지거나, 아무것도 채굴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람 목숨을 잃게 된다.

폭파는 과격한 일이 아니라, 가장 예민한 과학이다
사람들은 폭파라고 하면 “크게 터뜨리는 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발파 엔지니어의 업무는 터뜨리는 것보다 ‘안 터뜨리게 만드는 것’에 더 가까울 때가 많다.
암반은 단단하지만, 내부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특히 광물 자원이 박혀 있는 경우엔
폭파 방향이 조금만 어긋나도 채굴물 전체가 손상되거나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발파 엔지니어는 먼저
지질 탐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하 구조를 3D로 시뮬레이션한 뒤
폭약을 넣을 구멍의 깊이, 간격, 각도를 설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있다.
폭파 순서를 몇 밀리초 단위로 나눠 설계하는 작업이다.
이는 단순히 동시에 폭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암석이 차례차례 균형 있게 무너지도록 유도하는 시간의 기술이다.

이들은 어떻게 ‘시간을 설계’할까?
발파 엔지니어는 ‘디지털 기폭기’라는 장치를 통해
폭약 하나하나에 시간차를 입력한다.
예를 들어, 1번 구멍은 0.0초, 2번은 0.05초, 3번은 0.10초처럼
몇십 개의 폭약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암석을 유도 붕괴시킨다.
이 시간차는 현장마다 다르게 계산된다.
암석이 단단한지, 결이 어떤지, 주변에 어떤 장비나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모든 설계가 달라진다.
또한 발파 후에는 현장 진동 측정, 파편 비산 거리, 소음 기록 등을 종합해
‘이번 발파가 성공이었는지’를 평가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한다.
즉, 이 직업은 ‘폭파의 미학’을 이해하고
시간, 공간, 구조를 동시에 계산해내는 고도의 기술 직종이다.

한눈에 보는 발파 엔지니어의 세계
항목 | 내용 |
---|---|
직업명 | 발파 엔지니어, 폭파 기술자, Blasting Engineer |
주요 업무 | 광산·터널·건설 현장 내 발파 설계 및 시공, 지질 분석, 시간차 폭파 설계 |
수입 수준 | 초봉 연 3000만~4500만 원 / 경력자 및 해외 파견 시 연 6000만~1억 원 |
필요한 역량 | 암반 지질 지식, CAD 및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숙련, 현장 통제 능력 |
활동 장소 | 광산, 터널 공사, 고속도로 굴착, 수력발전소, 해외 건설 현장 등 |
자격 요건 | 발파 1급 또는 2급 기사 자격, 토목·지질·광산 관련 학위 우대 |

언제나 ‘0.01초의 오차’가 생사를 가른다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확성’이다.
폭약은 순식간에 큰 힘을 낸다.
그래서 1개의 폭약이 너무 일찍 터지거나 너무 늦게 터지면,
암석의 균열 방향이 달라지고
그 여파로 사고가 발생하거나, 전체 발파가 실패하게 된다.
심지어 자연 지진이 발생한 지역이나
지하수가 흐르는 암반층에서는 발파 설계를 다시 짜야 할 때도 많다.
그만큼 경험, 데이터, 감각, 기술, 그리고 끈질긴 관찰력이 모두 필요한 직업이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폭약 기술자’가 아니라
지하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라고 불린다.

말 한 마디보다 더 무거운 ‘기폭 버튼’
현장에서는 발파 전
모든 인원이 퇴장하고,
최종 안전 통신 확인이 끝나면
현장 책임자와 발파 엔지니어가 기폭기를 동시에 작동시킨다.
그 순간,
짧게는 0.1초 간격으로,
길게는 수 초 동안 암반이 ‘설계된 방식대로’ 무너진다.
이 광경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라,
시간과 기술이 만나 만든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백 명의 작업자 안전, 수십억 원의 장비, 수년 간의 공사 기간과 연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정밀한 설계자
우리는 터널을 지나가고, 광산에서 캐낸 자원을 사용하고,
도시 곳곳에 세워진 건축물들을 쉽게 이용한다.
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땅속 작업에는
언제나 이 ‘보이지 않는 기술자’가 존재한다.
그는 땅속의 암석을 바라보며
‘어디를 터뜨릴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천천히 무너뜨릴지를 계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직업은,
발파 엔지니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