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진열장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표범 박제.
한때는 어린이들의 시선을 끌고,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 등장했던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퇴색된 털, 꺼진 눈, 찢어진 귀, 갈라진 입술로
‘생명체’라기보단 ‘버려진 물건’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데 그 박제를 앞에 둔 사람이
작업 장갑을 끼고, 붓과 송곳, 헤어핀, 안구 모형, 실리콘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는 죽은 동물을 다시 ‘살아 있는 듯하게’ 복원하는 사람,
바로 박제 복원 기술자다.
그는 털 하나, 손톱 하나까지 관찰하며
생전의 표범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를 상상하고 복원해낸다.

박제는 썩지 않지만, ‘망가진다’
흔히 박제는 “반영구 보존”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햇빛, 습기, 공기, 먼지, 미생물로 인해
탈색, 건조, 부패, 곰팡이, 이물질 손상 등이 누적된다.
특히 20~30년 이상 된 박제는
- 코 끝이 부서지거나
- 입술이 갈라지며
- 유리 눈알이 빠지고
- 털이 뭉치거나 빠지는 일이 흔하다.
이 상태에서 다시 생생한 생명감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바로 박제 복원 기술자다.
그는 ‘처음 만들었던 사람’보다 더 높은 감각과 손기술이 요구되는 전문가이며,
박제라는 하나의 과거를 시간을 거슬러 되살리는 장인이기도 하다.

어떤 기술이 필요한 직업일까?
박제 복원은 단순히 붓질하고 실 붙이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표피 재봉, 털 교체, 모형 프레임 재가공, 안구 정렬, 근육선 복원, 색소 수채화 작업 등
미술, 해부학, 재료공학을 동시에 다룬다.
예를 들어,
호랑이 박제의 한쪽 눈이 떨어졌다면
단순히 붙이는 게 아니라
양쪽 눈동자의 시선 방향을 일치시켜야 하고,
그 시선이 ‘경계’인지 ‘여유’인지, 생전의 표정과 맞아야 한다.
또한 잃어버린 발톱이나 수염은
3D 출력, 실리콘 몰딩, 섬유 합성을 통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복제된다.
복원 전후에는
실제 생존 개체 사진을 수십 장 분석하고,
필요할 경우 박물관 큐레이터나 생물학자와 협업해 자세를 조율하기도 한다.

한눈에 보는 박제 복원 기술자의 세계
항목 | 내용 |
---|---|
직업명 | 박제 복원 기술자, Taxidermy Restorer, 동물표본 복원 전문가 |
주요 업무 | 동물 박제의 형태·색감·구조 복원, 손상 부위 수리, 보존 작업 |
수입 수준 | 건당 50만~300만 원 / 복잡한 작업은 수천만 원 이상 가능 |
필요 역량 | 해부학 지식, 미술 감각, 세밀 작업 능력, 박제 구조 이해 |
활동 분야 | 자연사 박물관, 동물원 교육실, 개인 수집가 의뢰, 연구기관 등 |

단 하나의 틈도 허용되지 않는 직업
박제 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조금 어색하면 바로 티가 난다’는 점이다.
눈동자가 1mm만 어긋나도 부자연스럽고,
턱의 곡선이 미세하게 틀어져 있으면 ‘죽은 느낌’이 확 살아난다.
그래서 이 직업은 장시간 앉아서 같은 부위를 다듬고 수정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히 원형 복구가 아니라
전시 목적에 맞는 연출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조형가’로서의 감각도 갖춰야 한다.
일부 전시용 박제는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의 눈빛”
“도약 직전 맹수의 긴장감” 같은 극적인 연출 장면까지 구현해야 하는데
이건 단순한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제 생명체의 움직임을 ‘정지 상태에서 표현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왜 이 직업이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최근 박물관들이 리뉴얼하면서
수십 년 된 동물 박제 전시물이 교체가 아닌 ‘복원’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교육기관에서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생태 보존 의식을 강조하면서
기존 박제물의 생생한 복원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소품, 광고 촬영, 미디어 아트에서도
‘실제 같은 동물의 형태’를 요구하면서
고퀄리티 박제 복원 기술자들이 상업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다.
때문에 이 직업은 예전보다 더 정밀하고 예술적인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는 사람들
박제 복원 기술자는
단순히 낡은 것을 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생명의 형태를 이해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예술가다.
자연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가 박제이고,
그 박제를 원래의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일은
자연과 시간, 생명과 기술을 동시에 다루는 직업이다.
그 사람의 손끝에서,
수십 년 전 사자 한 마리가 다시 눈을 뜨고,
한때 날아다녔던 수리부엉이가 다시 날개를 펼친다.
그의 직업은,
박제 복원 기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