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하루.
“베란다에 벌집이 생겼는데요. 너무 커요. 애가 밖에도 못 나가요…”
잠시 뒤, 덧신을 신고 복장 단단히 갖춘 한 남자가 출동한다.
헬멧, 보호복, 장갑, 모기장 마스크, 등에는 연기통이 달려 있고 손에는 긴 집게가 들려 있다.
그는 말없이 벌집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벌 종류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이게 장수말벌이면… 3시간은 걸릴지도 몰라요.”
이들은 벌집 제거 전문가, 혹은 해충 방제 요원이다.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하지만 때론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벌이 무서워? 벌집이 더 무섭다
벌은 원래 인간을 먼저 공격하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벌집을 건드렸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장수말벌, 흑말벌, 땅벌은
집단 공격성이 매우 강하고,
사람이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위협을 느껴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아파트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건물 외벽, 심지어 자동차 휀다 속까지
벌집이 만들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붕 아래, 전선 틈 사이, 외벽 균열 등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일수록
제거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벌집 하나를 제거하려면
단순히 방충복 입고 스프레이 뿌리는 게 아니라,
벌의 종류, 벌집의 위치, 크기, 공격성, 주변 위험도 등을 종합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벌집 하나에 3시간 걸리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가장 위험한 건 ‘벌’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
벌집 제거는 물리적 위험도 크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사소한 실수다.
벌은 본능적으로 검은색, 움직임, 진동, 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방제 과정 중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진동이 느껴지면
수백 마리의 벌이 동시에 공격 모드에 들어간다.
특히 장수말벌은 한 번 쏘이면
- 극심한 통증
- 알레르기 쇼크(아나필락시스)
- 심한 경우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방호복 안에 에피네프린 주사기(알레르기 응급 키트)를 챙기고 다닌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에서 벌에 쏘여 병원 이송된 사례는 1만 건 이상,
이 중 사망자는 연평균 10명 내외다.
벌을 제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벌에 쏘이고 놀라 달아나다 사고로 이어지는 일반인들이 많다.

한눈에 보는 벌집 제거 전문가의 현실
벌집 제거는 대부분 소방서 또는 민간 업체에서 담당한다.
소방서는 긴급성 있는 상황(공공장소, 유치원, 병원 인근 등) 위주로 출동하며,
일반 가정집, 상가, 외곽 주택은 민간 방제 업체에 의뢰되는 경우가 많다.
항목 | 내용 |
---|---|
주요 활동 | 벌집 제거, 말벌 퇴치, 벌 종류 식별 및 방제 |
근무 형태 | 민간 방제 업체 소속, 혹은 프리랜서 계약제 |
수입 수준 | 1건당 7만 원~15만 원 (위험도, 위치, 벌 종류 따라 다름) |
장비 | 방호복, 연막기, 살충제, 집게, 사다리, 응급키트 등 |
업무 강도 | 하루 평균 3~6건 출동, 이동거리 많고 폭염·추위 영향 큼 |
고정 월급 형태보단 ‘건당 수당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성수기(여름~가을 초)에는 하루 수백만 원 수입도 가능하지만
비수기에는 거의 일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벌집 제거도 기술이다
단순히 ‘벌 쏘임만 조심하면 되는 일’로 보면 오산이다.
이 직업은 고도의 관찰력과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
- 벌이 돌아다니는 비행 궤적만 보고도 벌집 위치를 유추해야 하고,
- 한눈에 말벌과 토종벌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 유충과 성체 벌의 활동 반경, 이동 방향까지 고려해 다음 벌집 형성 가능 지역을 예측해야 한다.
또한 벌집 제거 후에는 향이 남지 않도록 화학처리,
남은 벌 유충이나 성체의 활동 억제,
다음에 같은 장소에 벌이 다시 둥지 틀지 않도록 방지 코팅 작업도 포함된다.
이 모든 작업을 ‘말벌 떼의 공격 아래’ 진행해야 하니
단순한 노동직이 아니라 복합 방제 기술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냥 스프레이 뿌리면 안 돼요?”
민간 방제 전문가들이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아, 그냥 스프레이 하나 사서 제가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게 제일 위험합니다.”
가정용 스프레이는 산란기에 흥분한 벌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다.
오히려 자극만 주고 벌집 전체를 흥분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외벽이나 처마 아래 설치된 벌집은
스프레이를 뿌리는 순간 쏘일 확률이 100%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벌집은 발견하면 절대 손대지 말고 바로 전문가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현장에서의 긴장감은 말로 다 못 전한다
벌집 제거 전문가들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하나의 벌집을 제거하기까지 사전 관찰, 장비 세팅, 주변 인원 대피, 진입로 확보, 제거, 후처리까지
단순히 벌을 쫓는 게 아니라
작은 전쟁을 벌이는 것에 가깝다.

한 번은 실외기 내부 깊숙한 곳에 벌집이 있어서
작업자가 40분 넘게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그 사이 벌이 얼굴 쪽으로 몰려들어 코 뚫린 방충복 틈으로 침투한 경우도 있었다.
이 일은 단순히 ‘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정확히 알고, 조심스럽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